종교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무당교 신앙의 공통분모: 그들이 믿고 싶은 것과 기대하는 것들

MysticDreamer 2024. 12. 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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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며: 다양한 종교, 비슷한 속성?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무당교(샤머니즘적 신앙)’까지, 언뜻 보면 서로 다른 경전, 전통, 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차이를 벗겨내고 한 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면, 이들 사이에 의외로 비슷한 면모들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공통점을 짚어내며, “이들이 믿는 건 뭐가 그렇게 특별한가?”라는 의문을 품는다. 있는지 없는지 불분명한 대상에 대한 믿음, 자기 신앙만 진리라고 확신하는 태도, 기도를 통한 소망 성취, 그리고 영적 성취보다는 사후 세계의 안락을 노리는 욕망 등. 이런 특징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이번 글에서는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그리고 무당교(일종의 샤머니즘적 신앙 형태)에서 종종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특성들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인간이 신앙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한지를 유쾌하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루어보려 한다. 종교를 진지하게 파고드는 것도 좋지만, 때때로 한 발짝 물러나 가벼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Ⅱ.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마음: 믿음의 뿌리는 상상력?
“신”이라는 존재는 대개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렇다 보니 어떤 종교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실재하는지 확실하지 않은 대상을 철석같이 믿는’ 특성을 보여준다.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는 공통적으로 유일신 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이 신은 형상화되기 어렵거나 금지되는 경우가 많다. 무당교나 샤머니즘적 전통에서도 신령, 조상신, 자연신 등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한 믿음이 필수적이다.

이 점에서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다’는 표현은 다소 도발적일 수 있다. 물론 신앙인들은 그 존재가 실제하며, 감각 너머에 있는 ‘절대적 실재’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의심 많은 이들이 보기엔, 이는 마치 어린 시절 산타클로스를 철석같이 믿는 것과 비슷한 심리 기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인간은 본래 상상력이 풍부하고, 불확실한 미래나 공포,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기 쉽다. 그런 점에서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일종의 ‘창조적 상상력’은 인류 문명과 함께 발전해온 자연스러운 정신 작용일지도 모른다.


Ⅲ. 내 것만 진리, 남의 것은 사이비?: 배타적 진리관
종교를 둘러싼 두 번째 특징은 바로 “내가 믿는 것이 진리이자 올바르고, 다른 신앙은 잘못되거나 사이비”라고 확신하는 태도다. 이는 전통적 일신교들(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두드러지며, 무당교에서도 다른 무속 신앙을 자기와 다른 ‘틀린 것’으로 몰거나, 영적 우위를 내세우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런 배타적 진리관은 신자들의 결속을 강화하지만, 동시에 종교 간 갈등, 편협한 시각을 낳는다. 마치 “우리 축구팀만 진짜 실력자고, 다른 팀은 다 엉터리”라고 주장하는 광팬과 비슷한 구조다. 스포츠 광팬들이야 그저 팀 응원 수준에서 끝나지만, 종교의 경우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도 심각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물론 여기에도 맥락이 있다.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신앙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경계심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경계심이 지나쳐서 다른 신앙 전통을 무조건 ‘사이비’나 ‘잘못된 것’으로 몰아붙인다면, 이는 대화나 타협, 상호 이해의 여지를 닫아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Ⅳ. 기도로 소망 성취: 신적 자동판매기 환상?
“기도하면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발상은 많은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기독교에서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라는 성경 구절을 떠올리거나, 이슬람교에서도 알라에게 기도하여 도움을 청하는 행위, 유대교 신자들의 간절한 기원, 무당교에서 굿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뤄내려는 시도 등. 다양한 형태로 신에게 소망을 담아내는 전통이 존재한다.

이는 마치 “신이 만능의 ‘소원성취 기계’”라는 식의 기대를 심어준다. 물론 정통 신학자나 영적 지도자들은 이렇게 단순하게 해석하는 걸 반대한다. 기도는 소망을 실현하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라, 신과 소통하고 내면을 다스리는 과정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대중적 차원에서는 “기도만 하면 이뤄질 거야”라는 희망적 착각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기대감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초월적 힘에 의지하고픈 마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기도를 했다고 해서 복권에 당첨되거나 대학 시험에 무조건 합격하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나 어느 정도 깨닫고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도라는 ‘영적 보험’을 드는 편이 마음 편한 것인지도 모른다.


Ⅴ. 영적 성장보다는 사후 천국? 현실 만족과 사후 기대의 미묘한 균형
종교는 흔히 영적 수행, 진리 추구, 내면적 성찰을 강조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실에서 많은 신자들은 “죽어서 천국(또는 낙원)에 가고 싶다”는 욕망에 집중한다. 이슬람교에서는 천국(잔나), 기독교에서는 천국, 유대교에도 메시아 시대의 축복이 있으며, 무당교적 사고에서도 죽은 뒤 더 나은 영적 상태나 편안한 세계를 희망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수행 자체를 통해 현생의 욕망을 끊고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동양의 일부 전통(예: 불교나 도교식 해탈 개념)과는 대조적이다. 서양 종교나 무속 신앙에서는 대개 사후 세계를 낙원으로 상정하고, 거기서 복락을 누리고자 하는 바람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 ‘지극한 수행’을 통해 진리를 깨달으려는 노력보다는, 현세에서 누릴 것 다 누리고, 마지막에 하나님(또는 신령)께 칭찬받아 천국행 티켓을 얻으려는 식의 태도가 만연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신자가 그렇게 세속적 욕망에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신앙인은 현생에서부터 도덕적 삶, 사랑, 자비, 성실함을 실천하고 영적 성장을 추구한다. 하지만 대중적 정서는 “어떻게든 신의 눈밖에 나지 않고, 사후에 복 받는” 계산법을 머릿속에 깔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Ⅵ. 그렇다면 이 공통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네 가지 특징(없는 것을 있다고 믿기, 자기 신앙만 진리라고 확신하기, 기도로 소망 성취 기대하기, 사후 천국 기대하기)은 결국 인간 심리에 깊이 뿌리박힌 어떤 본성을 반영한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확고한 믿음을 통해 안정을 얻고 싶어 하는 마음, 자신만의 진리를 통해 정체성과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욕구, 기도를 통한 문제 해결의 희망, 그리고 사후 세계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심리가 어우러져 있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불안, 두려움, 한계 상황에 맞닥뜨렸다. 자연재해, 전쟁, 질병, 죽음 같은 커다란 도전에 대해 논리나 과학적 설명이 부족했던 시대에 사람들은 초월적 존재에 의지했다. 이는 생존 전략이자 정신적 치유 방법으로 작동했다. 시간이 흘러 과학과 합리적 사고가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Ⅶ. 종교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비판, 존중, 이해
여기까지 살펴본 네 가지 특징을 정리하면, 다소 냉소적 시각에서 보면 종교는 “상상 속의 존재를 맹신하고, 자기만 옳다고 우기며, 기도로 소원을 빌고, 사후 복을 꿈꾸는 현상”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이런 견해는 종교를 신랄하게 풍자하거나 비판하려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논리가 될 수 있다.

반면 믿는 이들 입장에서는 “실제 존재하는 신을 믿으며,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고, 기도는 영적 교감 수단이며, 천국 희망은 신앙인의 궁극적 위안”이라고 반박할 것이다. 결국 종교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 글에서 우리가 하고자 했던 것은 특정 종교를 폄하하거나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여러 종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면모를 유머러스하게 짚어봄으로써, 인간 신앙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종교가 주는 안정감, 공동체 의식, 도덕적 가르침 등 긍정적 측면도 많다. 동시에 배타성, 비합리성, 맹목적 신앙에서 비롯한 문제점도 존재한다. 종교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정신적 제도이기에, 그 복합성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Ⅷ. 믿음과 비판 사이에서 균형 잡기
우리는 종종 극단에 빠지기 쉽다. 종교를 절대선으로 여겨 맹신하거나, 반대로 종교를 어리석은 착각이라며 일축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다면적인 시각으로 접근해보면, 종교는 인간이 “불확실한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상상력, 소망, 진리 추구, 공동체 형성, 윤리 규범 확립이 뒤섞인다.

종교적 믿음의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본질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계속 믿는가? 그 답은 우리 인간의 내면에 있는 ‘의미 추구 본능’에서 찾을 수 있다.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고통스러울 때, 어떤 절대자나 초월적 체계를 통해 안정감을 얻고자 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선택일지 모른다.


Ⅸ. 결론: 공통점의 의미, 그리고 우리에게 남는 질문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 무당교들이 공유한다는 이 네 가지 특징은 결국 “인간이 신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에 대한 답변의 일부다. 없는 것을 있다고 믿고, 자기 진리만 옳다고 주장하며, 기도를 통해 소망을 붙잡고, 사후의 낙원을 바라보는 행위는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삶의 불확실성과 맞서기 위한 정신적 전략이다.

이 특징들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종교는 때로 사람들에게 도덕적 지침, 공동체 연대, 위로, 희망을 제공한다. 하지만 맹목적인 믿음과 배타성은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존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이것이다: “어떻게 하면 종교가 인간의 상상력과 희망을 활성화하는 긍정적 요소가 되면서도, 비합리적이고 편협한 시각에 빠지지 않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끊임없이 대화하고, 비판적 사고를 유지하며, 종교를 하나의 문화적·역사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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