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정우는 거실 소파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오늘 밤 그의 선택은 공포소설이었다. 손에 쥔 책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오싹한 분위기를 더해갔다. 글자들이 눈앞에서 춤을 추는 듯했고,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마치 자신이 소설 속 세계에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거실은 고요했다. 창밖에서는 간간이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소리가 났지만, 그것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정우는 책장을 넘기다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때였다.
"지직—"
마치 라디오 주파수가 어긋날 때처럼, 날카롭고 흐릿한 소리가 공기 중에서 흘러나왔다. 정우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거실에는 TV도 꺼져 있었고, 노트북과 스마트폰도 충전기에 연결된 상태였다.
"…전자기기 때문인가?"
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확인했다. 아무 이상이 없었다.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길했다.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리려는 순간, 정우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실 안이 너무 조용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들리던 바람 소리마저 사라졌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그의 귀에는 자신의 숨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다시—
"지직… 지이이직…"
이번에는 더 또렷하게 들렸다. 단순한 전자음이 아니었다. 마치 누군가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였다. 소리는 거실 구석, 텅 빈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정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거실 구석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 벽과 천장이 만나는 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아니,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림자가 일렁이며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순간, 그의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한기가 흘렀다. 심장이 조여들 듯한 공포가 엄습했다.
"…누구야?"
그는 용기를 내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소리는 점점 선명해졌다.
"지…이이직… 기이익…"
그것은 분명히 말을 하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이 어둠 속에서 흘러나왔다. 정우는 숨을 삼키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형체 없는 그림자가 꿈틀거리며 더 뚜렷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정우야…"
낮고 쉰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정우는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공포에 사로잡힌 채, 눈을 크게 뜨고 그림자를 응시했다. 그림자는 점점 더 뚜렷한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창백한 얼굴, 비어 있는 듯한 눈, 그리고 입가에 번진 기이한 미소.
그것은 거실 벽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정우는 본능적으로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저리 가!"
그러나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정우야…"
그 목소리는 이번에는 더 분명했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마치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그를 기다린 존재처럼.
정우는 땀에 젖은 손을 꽉 쥐고 문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몸이 무거워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듯했다.
그림자는 이제 바로 앞에 있었다.
그 순간, 정우는 온몸을 뒤덮는 강렬한 한기를 느꼈다. 마치 얼음장 같은 손길이 그의 얼굴을 스치는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췄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거실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림자는 사라졌고,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정우는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어둠 속 어딘가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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